[영화 후기] 중경삼림 - 사랑과 청춘
언제부턴가 보고싶었던 영화, 중경삼림을 드디어 보게되었다.
포스터만 보았을 땐 매캐한 연기가 자욱할 것만 같은, 무거운 영화일꺼라 예상했는데..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진 네 남녀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각보다 가벼운 스토리의 영화였다!
중경삼림의 뜻이 뭐일까? 찾아보니 '중경의 빌딩 숲' 이란다. 배경은 중경도 아닌 홍콩의 복잡한 도시 속이지만 어느정도 제목과 닿아 있다. 영화의 첫 대사처럼, 우리는 복잡한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어쩌면 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도시 속, 잠시 서로 마주친 네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1부
: 마약 밀매상과 실연 당한 남자
남자는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같이 오래된 연인과 헤어진 후 유통기한이 5월 1일까지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으기 시작한다. 자신의 사랑에도 유효기간을 정해놓고, 5월 1일이 되자 매일 1개씩 사놓은 통조림들을 모두 비워낸다. 마치 자신의 사랑을 남김없이 비우는 것처럼.
그리고 술을 마시며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낭만적인 사람..) 그리고 그 여자가 마약 밀매상이다. 그녀는 직업 상 항상 조심하며 살고 있다. 그녀 또한 약 운반자들이 도주를 하여 마음이 심란한 상태로 가게로 들어오게 되는데...
각자 슬픔을 안고 있는 두 사람이 만나, 잠시 같이 있던 것 뿐이지만,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뻔한 결말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부분이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거시 인생
사람은 변한다. 어제 파인애플을 좋아했던 사람이 오늘은 아닐 수도 있다
언제 부턴가 난 외출할 때면 항상 우비와 썬글라스를 낀다. 하지만 언제 비가 올지 언제 태양이 빛날 지는 알 수 없다.
2부
: 가게 점원과 손님
음식을 테이크아웃하러 오는 남자가 있다. 그는 경찰이다. 여자는 그 식당에서 잠심 삼촌의 일손을 도와 알바를 하고 있다. 그녀의 엄청나게 짧은 머리와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틀어놓는 음악은, 아주 자유분방한 영혼임을 추측할 수 있다. 어쩌다 그가 최근 실연당한 것을 알게 되고, 전여친이 가게에 편지를 맡기고 가게 되는데.. 그 편지 안에는 남자의 집 현관문 키가 들어있다. 여자는 호기심에 그가 근무하는 시간에 집에 가게 되는데..! 그리고 우렁각시마냥 집을 청소하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남자와 가까워지는데..
두 번째 이야기에선 여자가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라 자꾸 조마조마했다ㅠㅠ 근데 정말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여자는 남자와 대화 중 '난 인생을 즐기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재미없음 다른데 가죠.' 라고 쿨하게 넘기는 부분이 단단한 면이 있고, 새로움에 대한 용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매력적인 뇨자.. 남자 또한 특이한 구석이 있는데, 방의 사물들과 대화를 한다. 물론 혼잣말이긴 하지만 사물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집에 그녀의 손길이 닿는 것은, 그의 마음 또한 그녀로 서서히 채워지는 것처럼.
이 방이 점점 감정이 생겨난다. 강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
사람은 휴지로 끝나지만 방이 울면 일이 많아진다.
느낀 점
1. 사랑을 다르게 보는 서로가 만나 만들어진 청춘의 기억
한 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상에서 느껴진 감정을 글자에 그대로 담을 순 없어서.
2. 연출 방식이 대담하고 거침없으면서 예술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두 번째 이야기 속, 여자가 남자의 집안 곳곳을 탐색하는 장면은 마치 나도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연출자가 누군가 했더니, 그 유명한 왕가위 감독이다.. 그의 작품은 해피투게더만 보았었는데, 또 다른 매력이다. 1/2부의 배경이 같은데, 이어지는 포인트를 발견하는 것도 재미 중 하나!
3. 후기에서 다들 왕조위 눈빛이 미쳤다는 글을 많이 봤는데, 진짜다.. 눈빛에 감정이 너무 잘 느껴졌다. 김성무라는 배우는 에즈라 밀러 리즈 시절을 보는 듯 했다. 영상미와 더불어 배우들도 최고야.. 후속편까지 나왔다면 너무 좋았을텐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흐른 뒤 이다.
4. 나에게 이 영화는 탁한 색상이면서도 뚜렷한 윤곽을 가진 인상을 주었다. 마치 어릴 적 강렬한 기억을 떠올리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