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영화

[감상] 릴리슈슈의 모든 것

최당무 2024. 6. 29. 20:37

왓챠에서 늘 추천으로 뜨던 이 영화, 언젠가 이 영화에 대한 평이 어둡고 깊은 슬픔이 있다고 하여 계속해서 보기를 미뤄왔다. (사실 땡기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우울한 마음이 조금 저녁에, 문득 왓챠에 또 추천으로 뜨는 이 영화를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어, 자기 직전 가벼운 마음으로 재생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아주 내 취향이었음. 안 봤더라면 후회했을 것이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

 

1. 

영화의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영화 중간중간 불규칙적으로 나오는 이미지(reroad)와 상형문자, 그리고 그 상형문자에 대한 일본어 번역이 나온다. 처음에는 이 요소들이 어지러웠지만 곧 적응했다. 이 텍스트들은 '릴리슈슈' 라는 가수의 팬카페에서 팬들이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화 전반에 걸쳐 스토리를 관통하고 있다. 주인공인 유이치는 릴리슈슈의 팬으로, 이 팬카페에서 '필리어'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팬들과 함께 릴리슈슈의 에테르와 이 정신에 관하여 끊임없이 대화한다. 에테르에 관하여 계속 생각했다.

 

2

영화는 캠코더로 촬영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래서 날 것의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의 불완전하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생동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좋았는데, 그 중 하나는 아이들이 오키나와 여행을 떠나기 위해 어른을 상대로 삥 뜯는 장면이다. 다른 무리가 먼저 선수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다시 뺏는 추격씬이 너무 좋았다. 차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어떤 억압도 없이 자유로워 보였고, 결국 함께 갈취에 성공하여 여행을 떠나고 배 위에서 남은 돈을 모두 날리는 장면까지. 내일이 없는 청춘, 돈보다 옆에 있는 서로에 의해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며 인류애가 충만해졌다.

 

3

이 영화의 음악은 상당히 훌륭하다. 릴리슈슈의 에테르가 드뷔시의 아라베스크의 영향을 받았다는 대사가 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던 중간에 드뷔시의 노래도 찾아 들어봤는데, 정말 영화의 분위기와 이어짐을 느꼈다. 릴리슈슈의 노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글라이드. 귀에 계속 맴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큰 아픔과 슬픔을 경험한다. 그와는 정말 모순적이게도 장면과 노래는 꿈같이 환상적이다. 이 사이의 괴리감이 이 영화의 후유증처럼 자꾸 나에게 잔상을 남기는 것 같다. 섬세하면서 무던하고, 아프면서 아름답다.

ost - glide

 

4

유이치의 미모가 미쳤다. 최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을 보고 요리의 미모가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에 순수함과 아픔이 있다. 요리는 해맑음 속에 아픔이 보였다면, 유이치는 상황에 수동적인 모습 속 아픔이 있다. 그래도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주도성을 가지려는 모습이 작게나마 보였다. 암튼 두 인물 모두 영화에서 너무너무너무 예쁘게 담긴다. 아련한 얼굴이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살리는 것 같다. 감탄하면서 봤다.

왼 - 릴리슈슈 / 오 - 괴물

 

5

노래, 장면 여운이 깊게 남는다. 릴리슈슈의 장르를 더 보고싶다. 신기한 연출 방식(빛과 어둠, 몸을 보라색으로 표현했던 장면 등)과 담담하게 풀어내는 청춘의 아픔. 이와 비슷한 영화로 한국에는 <파수꾼>이 있다고 들었다. 이와이 슌지의 <4월 이야기>도 다음 영화로 볼 예정이다. 

 

십대의 불완전한 모습을 담아낸 영화이다. 그렇지만 불완전하기에 아름다운 그들이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정말 추천한다.

 

+

영화의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다. 이 영화는 이와이 슌지가 쓴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책 버전의 스토리와 약간의 차이들이 있다고 하여 책도 주문했다. 책에 대한 후기도 곧 가져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