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영화

[후기] 퍼펙트 데이즈 -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하여

최당무 2024. 8. 6. 08:35

나만의 주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에 기뻐하는 마음

당신의 완벽한 하루는 무엇으로 채워지나요?

 

가끔 영화관에서 혼자 보고싶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도 처음 접하자마자 그런 느낌을 받았다. 개봉한 지 꽤 되어서 상영관이 몇 안되었고, 집에선 조금 떨어진 곳을 찾아갔다. 월요일 오후 6:30 영화이고,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영화라 사람이 없을거라 생각한 예상과는 달리, 양 옆 모두 채워질만큼 사람들이 있었다. 

 

 

1

이야기는 화장실 청소부의 반복되는 하루의 행적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는 매일 자신이 정해놓은 규칙들을 묵묵히 행한다. 이부자리를 개고, 식물을 돌보고, 차에 타기 전 커피 한 잔을 뽑고, 운전하기 전 카세트테이프 중 하나를 골라 음악을 들으며 목적지로 향한다. 퇴근 후엔 목욕탕에 가서 말끔히 씻고, 지하철 안 음식점에 들른다. 자기 전엔 책을 읽고,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꿈을 꾸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일을 쉬는 날엔, 새벽이 아닌 아침에 일어나 약간의 변주된 일상을 살아간다. 영화는 덤덤히 그의 하루 일과를 보여주는데, 묘한 재미가 있다. 

 

 

2

그는 항상 현관을 나오면 하늘을 보며 상쾌한 듯 미소를 짓는다. 새로운 날이 시작된 것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세상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태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권태로움을 느끼며 하루의 소중함을 그냥 지나쳐 버릴때도 있다. 영화는 반복되는 일상은 누구나 같다고, 주인공의 루틴된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 루틴함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정돈된 세계, 그리고 반복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느낄 때 소소한 기쁨을 보여준다. 루틴이 어그러질 때도 있다. 동료의 무단결근으로 2명분의 일을 소화하며 야근을 한다거나, 타인으로 인한 감정적인 변화들로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변화들도 이내 안정적으로 제자리를 찾는다. 오히려 잠시 둘레길을 걸은 것처럼 새로운 감정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마주하기도 한다.

 

 

3

일에 귀천이 없다지만, 사람들이 무심코 갖는 육체노동자에 대한 시선과 무신경한 모습들도 나왔다. 혼자 사는 고령자의 증가, 하루치의 일을 하며 작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어느정도 현재 일본의 분위기를 담아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끈임없이 증명해야하는 사회에 환멸이 나서, 다시 원초적인 사람의 삶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과하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고 인정받으려는 사회 모습을 반증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영화의 초반부에선, 한 장면마다 어떤 뜻을 담고 있지? 하며 해석하려 했었다. 근데 이내 포기하고 영화를 언어가 아닌 마음으로 즐기려 했다. 그러니 내가 중요하다고 느낀 장면들은 나중에 자연스레 곱씹게 되더라.

 

 

4

주인공은 어쩌면 아주 작은 것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있다. 섬세함이 있다. 예를 들면, 공원에서 점심을 먹으며 문뜩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깨끗한 화장실 벽면에 비춘 나뭇잎의 그림자에, 강 물결에, 아침의 새소리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카세트테이프의 노래에서 그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따듯해진 마음은 이내 얼굴에 미소로 피어난다. 영화 엔딩 크레딧에선 코모레비라는 단어가 나온다. 뜻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다. 이 햇빛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에 의해 찰나의 순간 포착된다.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코모레비.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p.s.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다. 영화관의 사운드로 보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